사주카페는 망하는데 사주어플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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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카페는 망하는데 사주어플은 뜬다

이젠 커피값으로 행운에 기대고 싶은 사람들

글 조정민

글로벌 매거진 ‘타임아웃Time out’이 선정한 '2024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송리단길. 수많은 개인 디저트 및 로스팅 카페의 틈을 비집고 ‘사주 카페’라는 이름을 단 공간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커피머신도 그라인더도 없다. 당연히 향긋한 커피 냄새는 나지도 않는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식탁보를 덮은 테이블엔 왠지 모르게 영험한 힘을 가진 것 같은 작은 책과 아이패드가 올려져 있다.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하려는 MZ들의 도피처 ‘사주카페’ 내부 모습이다. 송리단길 상권 세로 500m 거리 기준. 올해 7월까지 대략 7개의 사주 카페가 영업하고 있다. 평균 70~80m 간격을 두고 영업 중인 사주카페 운영자들은 호객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가씨 들어와 봐~ 내가 잘 봐줄게. 서비스로 관상도 봐줄게”.

송리단길 인근 부동산 관련인은 “그나마 살아있는 사주카페는 탕후루, 셀프 촬영관, 마라탕 매장 동선 안에 있는 곳들”이라며 “건대, 홍대, 강남도 여기랑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온라인 사주 시장에 오프라인 사주 카페들은 손님을 뺏겼다”고 전했다.

 

▲경쟁력 없다면 죽는 건 마찬가지… 문 닫는 ‘오프라인 사주카페’

15일 방문한 송리단길 사주카페. 비용은 7만 원. 같이 온 두 명이 자신에게 점사를 보면 기본 100분에 각 10분씩 서비스를 준다고 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옆 테이블 50대로 보이는 여자 상담사의 앞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 20·30대 방문이 어느 정도 늘었느냐는 질문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2030 손님이지 뭐. 그런데 요즘 연애 프로그램에 사주보는 청년들도 나오고 이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 젊은이들이 TV에 나오는 사람들 찾아가서 직접 점을 보더라고. 밖에서 발품 파는 시간에 나도 유튜브나 해야 할 까봐. 대로변에 있다고 해도 잘 안 들어와. 한 블록 옆 사장님네도 나가떨어졌어.” 20·30대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사주를 보러 직접 카페로 발걸음하는 이들의 절대적 수치는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경기가 안 좋으면 속이 답답한 사람들이 점집으로 몰릴 거라 생각하지만, 요즘처럼 정말 힘들 때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바빠 물어볼 여유도 없겠지. 뭐. 점 보는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할 테고.”

 

▲ 점점 멀어지나 봐 비대면이 편한 ‘MZ세대 식 사주법’

그러나 오프라인 사주 시장과 달리 온라인 사주 시장의 상황은 달랐다. 구인·구직·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10~30대 16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0%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청소년 553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도 운세 경험을 묻는 질문에 65.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 운세 서비스를 보는 비율이 39.4%, 스마트폰 운세 애플리케이션이 28.9%, 사주카페 방문이 11.3%로 나타났다. 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해도 온라인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사주를 대하는 2030의 특징 중 하나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놀이이자 힐링의 순간으로 삼는 것으로 사주를 보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조차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돈도 없는데 직접 배워서 직접 본다

직접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했던 현묘 작가의 <나의 사주명리>는 도서 앱 ‘밀리의 서재’ 성별 연령별 인기 분포도에서 2030 여성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어둠과 미신의 영역에 있는 사주 명리. 입사 3년 차 때부터 사주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한 독자는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마다 스마트폰에서 사주풀이 책을 본다고. “나의 기질이나 특징을 남의 목소리로 듣는 것보다 내가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전보다 스스로를 잘 알 수 있어서 어려운 일을 판단할 때 도움이 되고, 친구들의 사주도 간단히 봐줄 수 있어서 좋은 점이 많다. 배우기 전까지는 사주에 돈을 많이 썼는데 이젠 돈도 안 들고 좋다”며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 미디어가 도와주는데 안 뜨는 게 이상하지

유사 이래 사주에 빠지지 않은 세대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미디어에서도 사주명리를 비롯한 신점, 타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다. 예전이었다면 종교적 문제로 편성조차 힘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K-오컬트 역대 최고 흥행작 ‘파묘’. 거액의 이장 의뢰를 받은 무당, 장의사, 풍수사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올해 2월 개봉 후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MZ 샤머니즘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까지 번졌는데 최근 방영을 종료한 SBS 신들린 연애가 대표적인 예다. 운명과 본능적 이끌림 사이에서 점술가들은 과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마음이 향하는 곳과 신이 점지해 준 인연이 불일치할 경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말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일으키며, 열기에 불을 지폈다.

 

▲ MZ 공략 ‘무료 AI 사주 서비스’ 가격도 저렴 … 오프라인 상권이 이겨내기 힘들어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 집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국내 온라인 운세 앱으로 점신(50%), 헬로우봇(24%), 포스텔러(24%) 등이 있다. 이밖에 100여 개의 기업들이 나머지 2% 파이를 가져가고 있다. 그중 국내 운세 앱 1위. 다운로드 수 11만에 달하는 점신이 대세다. 무료인데도 불구하고 소름 돋는 풀이로 유명하다. 또한 오늘의 운세, 신년운세 및 토정비결, 셀프 타로, 전문가 실시간 전화 상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앱에서 활동하는 상담사는 약 400명. 전문 상담으로 들어가면 상담 분야별로 상담사를 추천한다. 경쟁력 있는 상담사를 앱 이용자들이 직접 선별할 수 있도록 상담사의 전체 상담 횟수, 재상담률, 인터뷰, 상담 후기까지 공개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무료부터 시작해 1000~5000원 선에서 앱을 통해 사주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 일단 온라인에서 성공하라, 사주 분야에도 인플루언서가 있는 시대

실제 사람이 보는 신점 상담 역시 일반 오프라인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유튜브에서 사주 채널을 운영하는 역술인은 “나도 한때는 강남 상담소 앞에 대기 의자가 있을 정도로 소문난 집이었다. 손님이 점점 줄더니 코로나 이후 문을 닫을 뻔했는데,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비대면 전화 상담 서비스가 홍보가 된 덕분에 살아남았다”며 “얼마 전 넷플릭스에 틱톡, 아프리카,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모여 콘텐츠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 도화도르라는 젊은 사주 명리 공부하는 친구가 나왔는데 사주 방면으로도 인플루언서가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화도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유튜브 구독자 20.7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사주팔자 쉽게 풀어주는 남자로 활동하며. 신청자에 한해 사주에 맞는 운세가 담긴 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사주카페도 브랜딩없인 힘들어

이처럼 날로 간편하고 저렴해지는 사주 서비스는 어느덧 2030 사이에서 ‘스낵 컬처 Snack Culture(스낵을 즐기는 것처럼 가벼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간단한 어플과 1만원 대를 웃도는 사주 명리학 책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사주. 불편하게 얼굴을 맞대고,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들여가며 불특정 오프라인 사주카페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사람의 목소리와 기운이 영향을 미치는 신점이라면 모를까. 오프라인 사주카페 역시 일반 커피 전문점을 뜻하는 카페처럼 자기 브랜딩이 필요한 시대. 어정쩡한 입지를 고수한다면 커피 전문 카페든 사주카페든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청년들은 일종의 셀프 마음 챙김을 위하여 오늘도 수화기 너머로, 모바일 앱으로 점을 보며 웃고 견딘다.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세상이다 보니, 행운에 기대려는 이가 많은 게 아닐까. 커피값도 벌벌 떠는 시대. 우리는 만원 안짝의 비용으로 ‘이 모든 건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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