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할 때

202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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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할 때

The Art of Taste — The Heart of Hand

 Editor. 글 조정민 사진 홍정기


팥소를 넣은 반죽을 저울에 올린다. 가차 없이 120g으로 똑 떨어진다.

수십 년의 감각이 새겨진 손이다.

“반죽을 오래 만지면 감이 생기죠. 이건 손이 기억하는 무게입니다.”

소를 키우려던 왼손잡이 소년은 이제 사람을, 산업을 키운다.

“저는 왼손잡이예요. 예전에 왼손잡이는 밥 먹을 때 혼나기도 했죠.

그래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작업할 때 주로 왼손을 사용하지만, 양손잡이에 가깝거든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를 틈도 없이 40년 가까이 바삐 움직여온 세월.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백 년 맛집 ㈜베비에르의 정체성을 가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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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제과 현장에서 출발한 마옥천 회장은 광주 제1호 대한민국 제과 명장이자 기능한국인이며,

그리고 현재 (사)대한제과협회 제30대 회장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제과 브랜드 ㈜베비에르를 연 매출 수십억 원 규모로 성장시키며, 기술과 산업의 세대를 잇는 중심인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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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키우려던 손, 팥소를 빚다

처음부터 빵과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다. 전남 고흥 농가에서 태어나, 원래 꿈은 소를 키우는 일이었다. “농사를 짓고 싶었죠. 그런데 소 한 마리를 살 형편이 안 됐어요.” 결국 부모님 권유로 벌교 이모의 빵집에서 일을 배웠다. 그렇게 밀가루, 달걀, 물 3가지 재료로 새로운 생명을 빚어내는, 시골 청년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던 제빵 세계에 입문했다. ‘소’를 키우려던 손이 ‘팥소’를 빚기까지의 여정, 그 길 위에서 광주 빵지순례 필수 코스 ㈜베비에르 과자점이 탄생했다.

 

느리지만 우직한 손

마옥천 회장은 자신을 ‘거북이 같은 제빵사’라 부른다. “빵은 숙성과 발효를 거쳐 완성됩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요. 조급해하지 말고, 느리지만 꾸준히 내 할 일을 하며 기다려야 하죠.” 그는 ‘빵을 굽는 일은 느림의 미학’이라 말하며, 인생을 빵 제조 과정에 비유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3개월이면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기술은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 결승점에 와 있죠.” 그는 모든 것이 기본기의 싸움이라 말했다. “기본이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가져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유행보다 기본, 정성스러운 마음이 오래갑니다.” 빵에도 시간이 들듯, 사람 손도 그렇게 단련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손 들어라, 질문하라

그에게 ‘제빵인’은 손재주만 좋은 사람이 아니다. 질문으로 감각을 확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빵을 “세상과의 대화”라 표현했다. 반죽을 만지며 재료의 반응을 살피고, 오감을 깨우는 일.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자 답이다. 그는 현장 감각과 꾸준함의 힘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왜 이 공정을 하는지, 왜 이 반죽을 선택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이 바로 성장의 시작이라 믿어요.”

 

보이지 않는 틈, 사각지대를 다루는 손

1980년대 제과 현장에서 출발해 기능한국인, 광주 제1호 대한민국 제과 명장에 오른 그는 이제 ‘산업의 생태’를 바라보는 리더다. 2023년 대한제과협회 제30대 회장으로 취임한 마옥천 회장은 협회라는 틀 안에서 산업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제과업계의 흐름이 빠르게 변할수록 그는 더 자주 ‘손의 역할’을 떠올린다. “동네 빵집이 살아야 업계가 삽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의 틈이 너무 많아요.”

그는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손을 내민다. 협회가 주도하는 위생·노동법 교육, 재료업체와의 공동 세미나, 기술 교류 프로그램은 모두 사각지대에 놓인 제과 인들을 다시 ‘현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다. 소규모 동네빵집은 물론, 제도권 밖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까지 아우르며 산업의 균형을 잡는다. “관공서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곳, 제도권에서 빠진 현장에 우리의 손이 닿아야 합니다. 제과 협회는 그런 곳을 잇는 손이어야 해요.”

 

손에 손잡고

그는 제과 협회의 존재 이유를 “현장의 손들을 연결하고, 그 맞잡은 손을 놓지 않도록 힘쓰는 일”이라 말한다. “초창기 제과 협회는 제과점을 하는 사람들만의 모임이었죠. 1인 제과점부터 작은 찐빵집까지요. 지금은 프랜차이즈, 대형 카페, 복합문화공간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산업이 커질수록 그의 손이 닿는 영역도 깊어졌다.

 

빵의 생명력은 사람 손으로부터

“아무리 AI 시대가 왔다 해도, 빵은 결국 사람이 만듭니다. 수천 번의 연습과 실패가 만든 노련한 손끝을 기계가 흉내 낼 수 없죠.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의 손이 개입되어야만 빵에 경쟁력이 생긴다고 봅니다. 기계가 효율을 높일 수는 있어도, 반죽의 온도나 질감, 굽기의 타이밍은 결국 사람이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죠. 기술이 발전해도 기준은 손이 정하고, 빵 맛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손의 감각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는 것. 그는 그것이 제과의 본질이자, 사람이 만드는 빵의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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