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등산


COFFEE AND THE CITY


글 박희택 


한 여름의 등산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본다. 까마득하게 올라선 산등선 위로 뭉게구름이 걸쳐 있다. 푸른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이 내리쬔다. 한여름에 등산을 올라가다 말고 나는 위를 쳐다봤다. 숨은 가빠오고 땀은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양말 속 발바닥은 불이 나는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숨 막힐 듯 답답한 열기가 온몸을 덮어왔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여름날 나는 한낮에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은 어디까지나 위로 올라가는 행위이다. 오르막길을 끝까지 올라가는 것에 등산의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위해 힘든 순간들을 버티며 올라갔다.

무더위에 지쳤는지 매미 소리도 울음을 멈췄다. 잎을 털면서 바람을 피워내던 나무들도 조용히 숨죽이고 햇살에 매달리듯 늘어져 있다. 그림자 한 점 없는 인왕산 바위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올라갔다. 머리에서 줄줄 흐르던 땀이 턱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무더위에 등산은 오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후회를 중얼거리며 가방 옆에 매달린 텀블러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달콤한 아이스커피가 담겨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진한 커피 맛이 잠깐의 더위를 씻어줬다.

그렇게 3시간의 등산 끝에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다. 미세하게 불어오는 정상의 바람을 느끼며 흐르는 땀을 훔쳤다. 남은 커피는 이미 모두 다 마셨다. 가장 위에 올라와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봤다. 내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보고, 내가 사는 도시를 살펴봤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도시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흐물거리는 빌딩과 도로 사이로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그늘 아래로 숨어 위를 바라보며 뜨거운 여름의 햇살을 흘겨본다.

이처럼 무더운 날 나처럼 등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시간 동안 한 명의 등산객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그래도 올라왔다는 잠깐의 상쾌함이 온몸을 감돌았다. 그런 개운함도 무더위에 이내 녹아내렸다. 태양에 더 가까워져서 그런 걸까. 송골송골 맺히던 땀이 짭짤한 소금기를 남기고 증발해 버렸다. 

나는 고개를 들고 또다시 위를 쳐다봤다. 이만큼 올라왔지만, 여전히 하늘은 닿지 않았다. 뭉게구름은 걸려서 흐르지도 않았다. 더 이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상에는 정상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래를 다시 내려봤다. 어디선가 목마른 새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힘없이 메마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벗어 놓은 양말과 신발을 다시 신었다. 발바닥에 입이 있었다면 지독한 비명을 질렀을 테다. 위로 계속 올라왔으니, 이제는 다시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내가 살던 동네가 나오고, 내가 사는 집이 나온다. 차가운 물에 샤워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한 기분으로 에어컨을 틀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책을 펼치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을 것이다.

내일은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 내일은 등산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무더위에 땀을 줄줄 흘릴 일도 없고, 답답한 발바닥이 비명을 지를 일도 없다. 하지만 가게 문을 여는 내일부터 또 한 주 동안은 부지런한 걸음을 옮겨야 한다. 뜨거운 햇살도 없고 바람도 없고 계단도 없고 메마른 소리로 지저귀는 새도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등산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야 한다. 위를 향해 부지런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나가야만 한다.

이따금 가게 안에서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본다. 까마득하게 보이지 않는 하늘 위로 어떤 산등선이 보일 듯 말 듯하다. 그 위로 뭉게구름이 걸려 있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이대로 계속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위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등산과 같으니까.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며 숨이 가빠오고,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걷기 시작한 이상 돌아갈 수는 없다.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매장 음악을 켜고 에스프레소 세팅을 체크한다. 그렇게 오늘도 커피를 내린다.

등산도 가게도 가장 높은 곳을 보며 계속 걸어가야 한다. 가끔은 뒤돌아서서 내가 있던 곳을 한 번 둘러보고, 에어컨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기분도 떠올려보지만, 이미 나선 길 위에서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가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위를 보면서 계속 걸어간다. 그 시간은 3시간도 아니고 3개월도 아니다. 긴 시간을 계속해서 우직하게 나아가야만 한다.

커피를 하는 일은 어쩌면 이런 과정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정상의 달콤함이 그리워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지만, 정상에는 정상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다시 아래로 내려갈 일만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면 다시 위로 올라간다. 특별할 것 없는 무더위 아래에서 묵묵히 참고 위아래로 걸어가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커피는 그렇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한 여름의 등산처럼. 





 

글쓴이 소개

어제의 고민을 오늘 새벽에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바리스타로 느끼는 고민들, 커피에 대한 생각들을 그때그때 마음속에서 건져내어 문장으로 다듬습니다. 이러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를. 때로는 즐거운 커피 이야기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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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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